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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글화
Subject   이제는 말할 수 있다 4년 결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4년 방송 결산
(커뮤니케이션북스 게재)

□ <이제는...>이 기획되기까지

흔히 다큐멘터리를 사실을 통해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라거나 사실의 재구성을 통한 진실의 발언이라고 규정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현대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은 모름지기 이 땅의 다큐멘터리스트로서는 필수적인 과업이다. 해방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무수한 정치적 격변과 사건의 진실들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한국의 현대사는 다큐멘터리스트들에게는 도전의 대상이자 소재의 보고(寶庫)라고 할 만하다.
거칠게 보아 한국의 현대사는 정당성을 결여한 승자와 강자에 의해 지배되고 장악되었다고 할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패자와 약자들은 철저히 유린되거나 탄압받았다. 친일, 외세, 분단, 독재, 부패로 점철되는 부도덕한 기득권자의 만행에 의하여 진실이 은폐되고 이로써 권력이 고착화되기를 반복하면서 정의는 왜곡되고 인권은 신음해야만 했다. 지나간 수십년간 역사의 진실은 실종되고 가려졌다. 정치적 억압과 이념의 가위눌림과 세월의 망각은 뒤늦게 진실을 찾으려는 것을 무망한 노릇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4.3 사태, 반민특위, 인혁당 사건, 전태일 분신, 부마사태, 광주항쟁, 삼청교육대....등 얼마나 많은 역사다큐멘터리의 기획안이 사장(死藏)되거나 기각되었던가.
그러나 6월 항쟁,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등 우리 사회의 점진적인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진실을 찾는 노력은 각계각층에서 부단히 진행되었다. 상상력이라는 출구를 가진 문학과 같은 예술의 영역이나 학문적 논의라는 방패를 지닌 학계를 필두로 이러한 작업은 이미 전개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역사적 사건의 피해 당사자들이나 유족들의 뜨거운 육성에 의해 그 공간은 열리기 시작했다. 제도권 언론에 의해서도 간헐적, 부분적으로 시도되었다. 왜곡과 기만을 집행한 체제의 한 부분이기도 했던 이 땅의 방송에서도 노력이 없지 않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광주 민주화 항쟁을 최초로 다룬 1989년 MBC <어머니의 노래>나 KBS <광주는 말한다>가 그것이다. 이 두 프로그램으로 이 땅의 공영방송이 행한 과거의 오욕에 대한 충분한 속죄가 되는 것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그 본격적인 실천은 아무래도 1993년에 방송된 KBS의 <다큐멘터리극장>이라고 할 수 있다. 3당 통합이라는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YS 문민정부는 이전의 군사정권에 비해서는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일정한 진전을 가져왔다. 아마도 이러한 분위기가 <다큐멘터리극장>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이 프로그램은 당시의 시청자들은 물론 독재정권 하에서의 오랜 순치가 만든 주눅과 자기검열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방송인들에게도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그 일단의 방송인들 중에 MBC 교양 프로듀서들이 있었다. 이들은 <다큐멘터리극장>을 보며 '우리는 언제...'라고 되뇌이면서 절치부심하였다. '우리도 언젠가 정통 현대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하리라'는 각오 속에서 이들은 과 같은 시사고발 프로그램과 5.18 등 달라진 계기 특집을 하면서 저널리즘과 다큐멘터리를 결합하는 작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98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였다. 정권교체 후 5년이 지난 지금은 자기관리에 실패한 DJ 정권의 말기증세로 빛이 바랬지만 적어도 당시에는 특정 정파나 지역의 발호(跋扈)가 그 본질은 아니었다. 이는 이전의 권위주의 정권에 비해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가 선양되고 금기와 성역에 대한 도전이 가시권에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였다. 바야흐로 수구 기득권 세력의 역사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가능해진 것이었다.
이를 확인이라도 하듯 1998년 MBC 교양제작국에서는 정부수립 50주년 특집으로 <격동, 반세기의 통치자들>이라는 5부작 다큐멘터리를 기획, 방영했다(기획 박신서/ 연출 한홍석, 최승호, 정길화, 최우철 이상 방송순서순). 미군정에서 4공화국까지 하지, 이승만, 장면, 박정희 등 역대 통치자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도모한 프로그램이었다. 비록 드높은 완성도나 시청자의 크나큰 호응을 얻지는 못하였지만 본격적인 현대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출발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한편 MBC에서 <격동, 반세기의 통치자들>이 준비되던 1998년 그 무렵 KBS에서는 '개혁실천 특별제작팀'이 출범해 <이제는 말한다>를 추진하고 있었다. 현대사의 주요사건을 거의 망라한 1993년의 <다큐멘터리극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주요 쟁점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도모한 것이 <이제는 말한다>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려져 있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프로그램은 우여곡절 끝에 불방됐기 때문이다.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 '조선일보를 해부한다' 등 지금 보아도 민감하고 폭발적인 이슈를 다루고자 했던 이들 프로그램은 박권상 사장 취임 이후 불거진 사내 갈등에 휘말리면서 제작을 다 끝내고도 결국 방송이 좌절되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고 말았다.

□ 마침내 1999년 9월 12일 첫 방송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하였다. 1999년 상반기, MBC에서도 마침내 현대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대한 기획이 제기되었다. 이 당시 MBC 경영진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왔다고 한다. 경영진은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정권교체를 체감시키고 국민의 정부가 돋보일 것을 기대하였는지 어쩐지는 모를 일이다. 제작진(기획 김윤영/ 연출 윤혁, 이채훈, 박노업, 최우철, 정길화, 김학영, 홍상운, 허태정 등)은 초기에 바로 이를 심각히 우려하였다. 그토록 현대사 다큐멘터리를 갈구하다가 막상 기회가 주어지니 정치적인 '역이용'을 경계한 것은 아이러니칼한 일이다. 난상토론끝에 이들은 현대사를 새롭게 쓰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하고 전의를 불태운다.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사건을 위주로 하고 나아가 반공 이데올로기나 분단 체제와 결부되는 근본적인 문제도 짚고 넘어간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이를 놓치지 않겠다'였다. 그리하여 1999년 9월 12일 MBC 특별기획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1편 '제주 4.3'(연출 이채훈)이 방송되었다. 첫 편을 제작해 말하자면 기준선을 제공한 이채훈 PD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찌 보면 기회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제목으로 프로그램을 하기로 한 건‘20세기가 저물기 전에’우리 현대사의 왜곡된 부분을 조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초조감 때문이었다. TV 다큐멘터리가 역사의 기록이라는 기능을 해야 한다면 더 늦기 전에 카메라를 들이대야만 했다. 한편으로는 이미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제야 말할 수 있게 됐다는 점, 대한민국이 이 정도 '불경스런’얘기에도 체제가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안정된 사회가 됐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제주 4·3'에 이어 '동백림 사건', '조봉암과 진보당','여수 14연대 반란' 등이 계속해서 방송됐다. 이 중 '여수 14연대 반란’편은 여수 시민들이 반란군을 열광적으로 지지한 정치적 이유를 따졌고, 군부 내 좌익 숙청 과정과 박정희 소령의 남로당 관련 사실을 TV 사상 처음으로 추적하여 밝혀내 파장을 일으켰다. '여수 14연대 반란'을 다룬 이채훈 PD는 이 사건에 이어진 국가보안법 제정이 우리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자세히 짚어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갖고 있었는데 이것은 3년 뒤인 2002년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국가보안법 2부작으로 승화된다.
제9편‘노근리 사건의 진실’(연출 홍상운)은 6·25 당시 미군이 피난민 수백명을 사살한 노근리 사건의 진상을 조명했다. 한미관계의 뿌리를 건드릴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지만 주민들의 증언과 당시 발포 현장에 있었던 미군의 증언을 균형있게 활용하여 결론은 시청자가 내리도록 했다. 이 아이템은 AP통신이 전면기사를 내기 전에 MBC도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당시 참전 미군의 인터뷰가 성공할 지 확신이 안 서서 유보했던 소재였다. 제11편‘언론통폐합과 언론인 강제해직’(연출 정길화)은 권언유착의 역사적, 정치적 뿌리를 철저하게 캐내어 보여줌으로써 언론인의 원죄를 추적했다. 뿐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매우 훌륭한 미디어 교육의 자료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2편‘끝나지 않은 동백림 사건’(연출 김학영), 제3편‘조봉암과 진보당’(연출 박노업), 제6편‘인혁당 사건’(연출 한철수), 제13편‘이중간첩? 이수근’(연출 허태정)은 공안당국이 선포한 시각에 논리적으로 반론을 펴거나 권력남용 부분을 지적한 프로그램들이었다. 또 제4편‘6·29의 진실’(연출 윤혁)은 87년 6월 항쟁 당시 직선제 개헌 수용이 과연 누구의 발상이었는지 따져 본 추리 다큐멘터리였다. 그리고 제7편 ‘박동선과 코리아게이트’(연출 박노업), 제8편‘박정희와 핵개발’(연출 최우철), 제10편‘김형욱 실종 미스테리’(연출 이규정 ), 제12편‘실미도 특수부대’(연출 김동철)는 박정희 정권 당시 일어난 의혹 사건을 여러 경로로 되짚어본 프로그램이었다. 애초에 15편 정도로 기획했던 1999년 시리즈는 그러나 계획했던 방송분 중 '고문경찰 이근안'은 취재도중 그가 자수하는 바람에 그때까지 촬영한 테이프 일체를 에 넘겨주면서 제작을 중단했다. 또 '정인숙 여인 피살 사건'은 정인숙의 오빠로 유력한 증언자였던 정모씨가 다른 사건으로 구속되는 바람에 방영을 연기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13편 방송으로 끝났다.
결국 MBC 교양제작국과 MBC 프로덕션에서 총 11명의 PD가 13편을 제작했다. 1차분 방송 결과 아이템별로 서로 다른 구성방식을 취하다 보니 시리즈물다운 일관된 틀이 약하다는 평을 들었다. 당장 급하고 중요한 것부터 해서인지 매 프로그램 간의 연결성도 유기적이지 않았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런 프로그램을 언제 또 하게 될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무엇보다 99년 시리즈는 MBC에서 처음 시도된 현대사 다큐멘터리를 성공적으로 연착륙시켰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는 2000년 방송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발판이 되어 주었다.
권력에 대한 공포, 강요된 레드 컴플렉스, 그리고 거미줄처럼 얽힌 이해관계…. 왜곡된 현대사 속에서 옳은 걸 옳다고 못하고 그른 걸 그르다고 못하며 숨죽여 살아온 사람이 하나둘 이 아님을 알았을 때, 또 우리 현대사가 상처가 크면 클수록 이 프로그램에서 다뤄야 마땅한 아이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계속될 수 있는 당위의 힘은 강해진다. 99년 12월 26일 '간첩? 이수근'편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방송 후 반응과 관련한 심상치 않은(?)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더니 이 프로그램이 삼성언론상 기획 부문 수상작으로 정해졌다는 소식이 들릴 무렵인 2000년 2월, 마침내 MBC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한 해 더 연장 방송할 것을 결정했다.

□ 2000년 2차 시리즈 방송

정녕 1999년의 방송으로 말해야 할 것을 모두 다 말하였는가. 억눌린 자, 소외된 자, 패배한 자들의 항변과 하소연을 제대로 대변하였는가. 혹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프로그램이 특정한 한 시대에 대한 그저‘정치적인 옳음(Political Correctness)’으로만 머무른 것은 아닌가. 아니면 소재주의에 만족하는 것은 아닌가. 이 프로그램으로 행여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 마무리됐다고 오해받게나 하지 않을까…. 불과 13편으로 이 시리즈를 마감하기에는 말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 우리의 현대사다. 때마침 MBC 내외의 여건이 이 프로그램에 대한 우호적인 지원과 격려로 나타났다. 여론 선도층과 시청자 단체들은 이 프로그램의 업그레이드를 강력히 요구하였다. 무엇을 망설일 것인가. 멍석이 펼쳐졌는데 주저할 자가 그 누구인가. 바야흐로 새로운 진용을 갖추면서 전열을 가다듬는다. 386세대에서 475세대까지, 야전에서 편집실에서, 서고에서 비장의 칼을 갈던 교양제작국 프로듀서들이 전격 투입된다. 그리하여 수차례의 난상토론 끝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새로운 버전이 만들어졌다.
2000년 방송분의 제작진(기획 정길화/ 연출 정길화, 박노업, 김상균, 김환균, 한홍석, 이규정, 김동철 등)은 '김대중 납치 사건', '정인숙 피살 사건'을 비롯 첫해에 안 다루고 못 다루었던 소재들을 역사의 켜에서 끌어내고 금기의 성역을 한층 압박해 들어갔다. 그리고 6월 하순 첫방송을 목표로 양민학살을 다룬 '00사단의 사라진 작전명령서', 6.25 당시 미국의 세균전 의혹을 짚어보는 '일급비밀! 미국의 세균전' 등이 속속 기획되었다. 2000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방송 내역을 살펴보면 99년에 이어 우리 현대사의 미스터리와 숙제들에 대해 광범한 접근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을 특별히 주목되는 주제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내용에 따라 일부 중복).

1) 6.25 50주년
. 00사단의 사라진 작전 명령서
. 일급비밀! 미국의 세균전

2) 미국에 대한 재인식
. 00사단의 사라진 작전명령서
. 일급비밀! 미국의 세균전
. 94년 한반도 전쟁위기
. 어둠속의 외침 -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 민족일보와 조용수

3) 박정희시대에 대한 성찰
. KT공작의 실체 - 김대중 납치사건
. 일본 커넥션 - 쿠데타 정권과 '친한파'
. 금기의 시대 - 건전가요와 금지곡
.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 전태일과 그 후
. 땅에 묻은 스캔들 - 정인숙 피살사건
. 민족일보와 조용수

4)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의 새로운 시각
. 94년 한반도 전쟁위기
. 남북교류의 선행자(先行者)들

5) 인권과 사회정의
. 녹화사업의 희생자들 - 군대가서 죽은 아들아
. 베트남전의 포로·실종자들
.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 전태일과 그 후
. 분단의 너울, 연좌제
. 고문 - 끝나지 않은 전쟁

이렇듯 1999년에 이어 2000년 <이제는...> 역시 우리 현대사의 숙제들을 거의 망라했다. 특히 위에서 살필 수 있듯 2000년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주된 관심사는 '미국'과 '박정희'로 압축된다. 이 두 주제가 시리즈의 대부분(15편 중 10편)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 최대의 화두는 '미국'과 '박정희

6.25 전후 벌어진 숱한 양민학살의 궁극적이고도 법적인 책임이 미국에게 있음을 공개된 비밀문서와 브루스 커밍스(시카고대), 김동춘(성공회대) 등 학계의 진단과 분석을 통해 설명한 '00사단의 사라진 작전명령서'(연출 박노업)를 필두로, 미국은 6.25 당시 한반도에서 일어난 세균전과 관련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밝혀낸 '일급비밀! 미국의 세균전'(연출 김환균) 등은 우리 현대사와 관련된 미국의 역할과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것이었다. 또한 <이제는...>의 소재치고는 아주 최근의 일을 다룬 '94년 한반도 전쟁위기'(연출 정길화)편도 지난 94년 북핵 문제로 인한 위기상황 때 미국의 북폭 시나리오가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짚어보면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를 우리 민족의 의지로 직접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고 미국의 존재가 한반도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사실상 반미적 행동의 시발이라고 할 만한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연출 한홍석)을 다룬 것도 특기할 만하다. 방송 당시의 분위기는 6.15 정상회담 이후 한미관계가 미묘해져 있었고 특히 매향리 문제 등이 불거지고 있었다. 또 주한미군에 대한 문제제기가 터져 나오면서 마침내 한국내 미국의 역할을 둘러싸고 종전과는 다른 여론이 일자 "반미는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시비까지 나오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제작진 주변의 우려를 불식하고 이른바 부미방 사건을 차분하게 그려낸 '어둠속의 외침 -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은 용공조작으로 묻혀졌던 18년 전 사건의 진실을 찾아낸 프로그램이었다. '민족일보와 조용수'(연출 감환균)편은 박정희 정권 당시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가 처형당한 이면을 미국과의 연관성 속에서 해부했다. 즉 자신의 전력(前歷)에서 사상적 콤플렉스를 가진 박정희가 당시 강력한 반공정권을 원하고 있던 미국의 신임을 얻기 위해 혁신세력을 희생양으로 삼았음을 여러 증언과 문건을 통해 밝혀냈다.
박정희시대를 다룬 프로그램들의 성과도 만만치 않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살해범이 오빠 정종욱씨가 아닐 수도 있음을 실증적으로 취재하고 절대 권력의 절대 부패를 폭로한 '땅에 묻은 스캔들 - 정인숙 피살사건'(연출 김동철)을 비롯해, 이용택 등 당시 중정 간부로부터 최초로 공개증언을 끌어내면서 정보기관의 공작과 미국의 개입 등을 생생하게 추적한 'KT공작의 실체 - 김대중 납치사건'(연출 홍상운), 개발독재의 허구와 기만을 낱낱이 고발하고 노동자의 자기포기적 분신이 어떻게 연유됐는지를 냉철하게 짚어낸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 전태일과 그 후'(연출 홍상운) 등은 이들 사건이 30년 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도 유효한, 우리 사회에 대한 근본적 질문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또한 쿠데타 정권이 앞으로는 민족정기를 내세우면서 뒤로는 일본의 기득권층인 극우 보수 세력과 유착된 과정을 증언과 자료를 통해 실증적으로 논파한 '일본 커넥션 - 쿠데타 정권과 친한파'(연출 김상균) 또한 인구에 회자됐다.
이외에도 징병권을 가진 국가권력의 책임 문제를 따진 '베트남전의 포로·실종자들'(연출 한홍석), 정치 권력이 국가안보를 농단하고 젊은 학생들의 인권을 유린한 이른바 녹화사업의 죄악상을 폭로한 '녹화사업의 희생자들 - 군대가서 죽은 내 아들아'(연출 이규정), 반세기 분단 고착화 이후 각인된 연좌제의 폐해를 다룬 '분단의 너울 - 연좌제'(연출 정길화), 그리고 군사독재 때는 물론이고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 이후에도 끊임없이 등장하는 고문의 문제를 제기한 '고문, 끝나지 않은 전쟁'(연출 홍상운) 등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보편적 인권과 사회정의에 관해 부단히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이런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2000년 <이제는 말할 수 있다>도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 피해자의 고발과 가해자의 반박, 목격자의 증언과 전문가의 분석이 치열하게 맞부딪치고 상박(相搏)하는 토론의 장을 기대했던 사람에게는 피해자의 한풀이성 하소연과 가해자의 변명 또는 합리화, 목격자의 기피와 전문가의 상투적인 양비 양시론이 무성한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특히 주요 사건 핵심 관계자에 대한 접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 해 한쪽 증언에만 의존해야만 했던 일부 프로그램은 아쉬움의 여지를 남겨 주었다. 5.16이나 신군부 주체세력의 증언 거부나 기피는 여전했고 어떤 이는 소송을 위협하기도 하는 등 역사적 진실을 찾고자 했던 제작진의 노력은 수시로 벽에 부딪쳤다. 아직도 말할 수 있는 때가 아니라며 인터뷰를 거절한 많은 이들은 거의 한 때 주요한 위치에 있어 일세를 풍미한 사람들이었다. 왜 그들은 당당하게 그 때의 일을 밝히지 않는(못하는) 것일까.
2000년에 이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은 7%대. 당시 2000년 및 통산 최고의 시청률을 올린 프로그램은 '땅에 묻은 스캔들 - 정인숙 피살사건'으로 시청률 14.4%에 점유율 37.2%이었다. 권력층 내부의 숨은 이야기에다 스캔들, 미스터리 등 대중적 흥미를 끌만한 내용이 골고루 담겨 있어서인지 일요일밤 11시 30분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치고는 매우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 그 외에도 '녹화사업의 희생자들'이 10.6%, '김대중납치사건'이 10.1%로 기록되고, 양민학살을 다룬 '00사단의 사라진 작전명령서'가 9.3%로 나타났다.
시청자들은 홈페이지 게시판이나 ARS 전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표명해 왔다. 제작진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제목에서 받은 인상탓인 듯 과거 권위주의 시대 때 우리 방송의 편파 불공정성을 지적하면서 왜 그때는 제대로 말못했는지를 힐난하는 지적도 많았다. 쉽게 말해 '기회주의' 아니냐는 것. 이에 대한 제작진의 응답은 "(과거의 잘못을) 겸허히 반성하며 그 반성의 뜻은 지금 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철저한 실천으로 보여 드리겠다"는 것 외엔 다른 할 말이 없었다고. 이 프로그램을 즐겨본 시청자들은 특정소재의 경우 과거 사건의 규명에서 끝나지 말고 현재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담아 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역사적 성찰을 넘어 저널리즘적인 기능까지 수행해 달라는 주문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2000년 방송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외연을 넓히고 인지도를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그런 덕분인지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인 2000년 10월에 2001년 상반기 중 연장 방송이 결정되었다. 드디어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다년 기획, 장기 제작 시대가 열린 것이다.

□ 2001년 3차 시리즈 방송

3차 시리즈인 2001년 방송의 제작진(기획 이채훈 연출 이채훈, 정길화, 한홍석, 홍상운, 이정식, 강지웅, 박건식, 이규정, 김동철 등)은 신진대사를 통해 일찌감치 구성되었다. 무엇보다 3차 방송분은 김중배 사장 취임 이후 금요일밤 10시 5분전 방송이라는 교양 프로그램으로서는 파격적인 전진배치를 이루었다. 이하 2001년 3차 방송분에 대한 개요는 이채훈 CP의 시리즈 결산 원고를 정리하였다.

4월 27일 방송한 '보도연맹Ⅰ-잊혀진 대학살'부터 8월 17일 방송한 '박정희와 레드 콤플렉스-황태성 간첩사건'까지 3차 시리즈 15편의 장정이 끝났다. 1999년치부터 세면 모두 43편을 방송했으니 MBC의 정통 현대사 다큐멘터리가 이제는 무시 못할 저력을 쌓았다고 생각된다. 어느 프로그램인들 힘들지 않으랴.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조금씩 쌓여온 제작의 노하우가 올해 시리즈에서 알게 모르게 힘이 되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우리 현대사를 건강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프로그램화할 수 있는 PD들의 층이 두꺼워진 것도 수확이다.
"옳은 건 옳다 하고 그른 건 그르다 하는" 단순 소박한 생각으로 제작했을 뿐인데 '방송대상 작품상', 여성단체연합이 선정하는 '평등 인권의 디딤돌 대상' 등 과분한 상도 적지 않게 받았다. 하지만 급속히 높아져 온 시청자의 기대 수준을 따라잡는 데 미흡한 점이 많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려운 아이템을 방송했다는 사실 자체로 인정받는 '소재주의'의 시대는 갔다. 이 점을 잘 알면서도 시청자에게 좀 더 쉽고 재미있게 다가설 수 있도록 만들지 못한 점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완성도의 문제다.
이번 시리즈의 특징은 첫째, 80년대의 시국사건을 다루면서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한 방송·언론에 대한 자기 반성을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공안기관이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폭력으로 탄압할 때 언론은 한발 앞선 여론재판으로 그러한 폭력을 정당화하곤 했다. 80년대의 마녀사냥식 보도는 단순한 정보 왜곡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여러 사람의 인생을 파멸시켰다. 당시의 시국사건을 다루면서 언론을 피해 간다는 것은 자기기만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아픔을 무릅쓰고 언론 특히 방송의 부끄러운 과거를 언급했다. '마녀사냥-도시산업선교회'(연출 홍상운), '200억톤 물폭탄의 진실-금강산댐'(연출 이정식), '조국은 나를 스파이라고 불렀다'(연출 이규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특정한 집단이나 개인을 고발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짊어져야 할 원죄를 솔직하게 얘기하자는 취지로 관계자를 섭외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와는 맥락이 다르지만 '자유언론 실천선언'(연출 정길화)은 74년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일어난 동아투위 사건의 전말을 소상히 밝혔다. 유신독재 시절 언론자유를 외치던 기자들을 거리로 내몬 장본인들이 요즘 탈세와 횡령 등으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바, 언론자본이 '비판언론'을 자처하며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으로 몰고 가는 작금의 언어 왜곡에 일정한 반론을 제기하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작지 않은 부수확이었다.
둘째, 2002년 월드컵을 1년 앞둔 시점에서 한일관계의 본질을 짚어본다는 취지에서 일본 관련 아이템을 대폭 포함시켰다. 65년 체결된 한일협정은 북일수교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직접적인 요인이므로 냉정하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었다. 통일 이후의 새로운 한일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는 점에서 '3억불의 진실, 한일협정'(연출 홍상운)은 의의가 큰 아이템이었다. 누구나 속설로 알 뿐 구체적인 실상을 언론에서 다룬 적이 없는 '6·25 일본 참전의 비밀'(연출 박건식)은 가장 많은 특종 취재를 기록한 수작이었다. 한국전쟁 중의 소해작업에 직접 참여한 일본인을 인터뷰하고, 일본이 참전의 대가로 한국의 재식민지화를 요구했다는 증거문서를 발굴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또 하나의 분단, 재일동포'(연출 김동철)는 역대 한국 정부가 재일동포를 방치했을 뿐 아니라 공안 시각에서 오히려 그들을 탄압해 왔음을 입증했다. 새로운 세기에 우리 정부가 취해야 할 재외동포 정책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 아이템이었다.

□ 계속된 현대사의 뿌리캐기 작업

셋째, 이 프로그램에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리 현대사의 뿌리 캐기 작업은 올해도 계속됐다. '반민특위, 승자와 패자'(연출 정길화)편은 친일파 청산의 호기였지만 이승만 정부에 의해 유린된 반민특위의 전말을 짚어보고 민족정기의 문제를 제기한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이 방송은 2차대전 후 드골 정부의 나치 부역자 처리 과정을 생생한 프랑스 현지 취재로 소개, 잘못 끼워진 우리 역사의 첫 단추를 실감나게 조명했다. 6·25 개전 초기 후퇴하는 국군이 저지른 우리 역사 최대의 민간인 학살극을 본격 조명한 '보도연맹' 2부작(연출 이채훈)도 파급이 상당히 큰 아이템이었다. 특히 경산 코발트 광산에 대한 발굴 등 쉽지 않은 취재에 성공,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유족과 일부 지역운동가 중심의 진상규명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두 아이템 모두 먼 옛날의 일이지만 오늘까지도 깊은 상처가 남아 있음을 반증한 셈이다.
넷째, 사상과 양심의 자유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한미관계의 본질을 천착하고, 권력에 의해 가려져 온 현대사의 미스터리를 밝히는 등,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기본 정신을 확대 심화시킨 내용들을 올해도 변함없이 방송했다. '장도영과 5·16'(연출 한홍석)은 반혁명죄로 구속됐다가 풀려난 뒤 미국으로 망명한 장도영을 TV사상 최초로 인터뷰, 5·16 쿠데타를 해석하는 지평을 넓혀 주었다. '이승만을 제거하라-에버레디 플랜'(연출 한홍석)은 자기의 이해관계와 어긋나면 일국의 대통령도 마음대로 제거할 수 있다는 미국의 제3세계 지배전략을 보여주었다. 가시적인 사건이나 인물이 드러나지 않으므로 TV로 다루기에 매우 까다로운 소재였지만 흥미진진한 구성과 세련된 영상이 돋보였다.
68년 한반도를 핵전쟁 위기로 몰고 간 '푸에블로 나포사건'(연출 강지웅)은 남북관계, 한미관계, 북미관계의 본질을 한꺼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흥미있는 소재였다. 푸에블로 승무원들과 당시 미국무부 관리들의 인터뷰, 그리고 기밀 해제된 미국 비밀문서들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강지웅 PD는 당시 푸에블로호가 북한 영해를 침범한 게 분명하다고 결론지었다. 이 프로그램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역학관계의 본질을 보여주고 진정한 평화를 위해 우리 정부가 취해야 할 자주적인 외교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한편 제작진 내부에서 진지하게 반성해야 할 점도 많다. 시청자 중심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제작진 중심의 프로그램이 아니냐는 안팎의 비판은 특히 경청해야 할 부분이다. 시청자의 눈높이에 비해 내용이 어려웠다는 것은 그만큼 내용이 설익었다는 혹독한 꾸짖음에 다름 아니다. 편당 평균 제작기간이 만 2달이 채 안 되는 열악한 조건을 탓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 깊이있는 리서치와 사전 구성을 위해 좀 더 넉넉한 예산과 제작기간을 확보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PD들이 더욱 치열한 의식으로 아이템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낼 때 비로소 좀 더 쉽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가능하다는 점을 더욱 강조해야 할 것이다. 둘째, 시리즈물다운 통일성이 결여됐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큰 문제점을 포함, 팀 내부에서 반성해야 할 작은 문제들이 적지 않다. 이미 방송된 아이템을 놓고 제작진 내부에서 '복기(復碁)하듯' 다시 꼼꼼히 검토하고 결산하는 과정이 없었던 것도 아쉽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잘 정리해서 앞으로 겪게 될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 2002년 4차 시리즈 방송

마침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MBC의 브랜드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3차분 방송 이후 자연스럽게 4차분 방송 연장 결정이 이어졌다. 2002년 신년벽두부터 프로그램이 편성된 것이다. 무릇 모든 PD들은 자신이 투입된 이후 그 프로그램이 막내리는 것, 즉 이른바 상투잡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하여 현실의 승자와 역사적 진실이 유리된 우리 현대사의 참모습을 제대로 인식하는 일이 중단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4차분을 맡은 제작진(기획 정길화/ 연출 정길화, 이채훈, 곽동국, 한홍석, 홍상운, 채환규, 조준묵, 이규정 등)은 비록 편성이 원래의 일요일밤 11시 30분대로 돌아갔지만 시리즈가 계속된다는 것에서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올 1월 국가보안법 2부작으로 방송이 시작된 이후 전개된 양상은 사뭇 고무적이었다. 2부작으로 2주 연속 방송된 '국가보안법'은 말하자면 초전박살의 선전포고(?)였다. 그리고 해방공간에서 활동한 우익 테러조직을 방송에서 최초로 조명한 '비밀결사 백의사'(연출 한홍석)와 5공 정권에 의한 엄청난 인권유린 사태를 다룬 '버림받은 희생, 삼청교육대'(연출 채환규)가 일요일밤 11시 30분대 교양 프로그램으로서는 상당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2002년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삼청교육대'편은 13.6%라는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시청률을 보였을 뿐 아니라 차마 나서지 못하고 있던 피해자들로부터 제보가 쇄도해 마침내 계획에 없던 속편을 기획하기에 이르렀다(연출자 채환규 PD는 원래 삼청교육대 편에 이어 청송 보호감호소편을 제작할 예정이었다).
이후 '김일성 항일투쟁'(연출 곽동국), '건국대 사건'(연출 조준묵), '북파공작원'(연출 MBC 프로덕션 이규정), '도쿄전범재판(연출 홍상운)', '친일경찰 노덕술'(연출 정길화) 등이 방송되었다. 엄정한 검증으로 역사적 사실을 추적한 '김일성 항일투쟁의 진실'의 경우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네티즌간의 뜨거운 논쟁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과장도 폄하도 아닌 시각으로 진실을 천착하고자 한 이 프로그램으로 이제 소위 가짜 김일성 시비는 종언(終焉)을 고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물론 프로그램에서도 지적하였듯 북한 정권 수립 이후 김일성의 공과에 대한 논의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2월 24일 방송된 '북파공작원- 조국은 우리를 버렸다'에는 생생한 육성 증언의 힘이 드러났고 방송 이후 낙담한 북파공작원들의 과격한 도심시위로 프로그램이 더 유명해졌다. '천황을 살려라-도쿄전범재판의 흑막'편은 차분하고 격조있는 다큐멘터리의 진수라는 평이 있었다. '53년만의 증언, 친일경찰 노덕술'은 방송을 얼마 앞두고 국회의 민족정기 바로세우기 모임에서 친일파 명단 708명을 발표하면서 우리 사회에 한때 친일파 청산 논쟁이 비등하였고 이런 국면에서 방송돼 기대 이상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사건의 철저한 재구성이 돋보인 '8.18 판문점 도끼 사건'과 속편 방송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정화작전 삼청계획 5호의 진실'편 등이 그 뒤를 이었다.
2002년 방송분에서 특기할 것이 있다면 금기와 성역의 진지를 더욱 압박하고 프로그램의 영역을 최대한 넓힌 것이었다. 여기에 국가보안법과 김일성 항일투쟁, 황해도 신천 학살 사건 등이 포함된다. 다른 하나는 80, 90년대의 사건에까지 범위를 확장한 것이다. 삼청교육대, 건국대 사건, 폭력철거(연출 프로덕션 이규정), 서울미문화원 점거사건(연출 곽동국), 그리고 이른바 분신정국을 다룬 '91년 5월 죽음의 배후'(연출 홍상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폭력철거'편의 경우 정치적 이념적 사건에 치중했던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전형적인 내용과는 구별되었는데 이들 프로그램들의 반응에서 향후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어떤 행로를 걸어야 할 것인지를 어느 정도 시사(示唆)받을 수 있다고 하겠다. 특히 마지막편으로 방송된 '91년 5월 죽음의 배후’(연출 홍상운)에서는 이른바 김기설 유서대필 사건을 철저히 추적해 고 김기설씨의 아버지로부터 유서의 필적이 아들의 것이 맞다는 확인을 받고 미국, 일본, 한국의 필적 전문가들로부터 이에 관한 검증을 받는 내용을 방송해 반향을 일으켰다.
2002년 방송분에서도 아쉬운 점은 많다. "무덤까지 안고 가겠다"며 증언을 거부한 공안검사 출신의 전직 고관, "방송이 좌파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며 인터뷰를 외면한 어느 구정치인... 등 여전히 증언을 거부하는 인사들에 대한 접근의 한계는 올해에도 계속된 문제였다. 또 객관성의 신화를 추구할 것인가, 그보다는 주제의식을 지향할 것인가 등은 이 프로그램 제작진 내부의 주요한 쟁점이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방북 취재가 좌절된 '황해도 신천 학살 사건'편이다. 두 차례에 걸친 북측의 초청장이 있었음에도 관계당국의 구태의연함으로 인해 방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담당 PD는 미국의 독립다큐멘터리스트를 통해 간접취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이라는 북한측의 주장과 '반공의거'라는 월남한 우익인사들의 주장을 신중하게 검토하면서 사건의 실체에 입체적으로 접근하고자 한 '망각의 전쟁, 황해도 신천 사건'(연출 조준묵) 편 방송을 그들이 실제로 보고서 자신들의 협량한 태도에 어떤 반성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지난 4월 28일 2002년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성료하였다. 이러한 국면에서 이 프로그램의 향후 행로는 어떨 것인지에 대하여 벌써부터 방송가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3년간의 방송으로 방송대상 작품상, 방송위원회 이 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삼성언론상, 앰네스티 언론상, YWCA 올해의 좋은 프로그램상 등 각종 상을 수상했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2002년 방송으로 프로듀서연합회 이 달의 PD상, 민언련 2월의 좋은 프로그램상, MBC 사내 특별격려상 등 수상을 계속해 지금까지 통산 26 차례의 상을 수상해 프로그램의 성가를 쌓았다. 특히 올해 들어 공전의 반향을 일으킨 '버림받은 희생, 삼청교육대'편(연출 채환규)은 미국의 에미상 다큐멘터리 부문에 출품되면서 이 프로그램의 다큐멘터리 정신과 완성도를 국제적으로 검증받을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MBC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정통 다큐멘터리로서 MBC의 브랜드 프로그램이 되었고 올해의 추세로 보아 향후에도 더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다고 보고 차후에도 이 시리즈를 계속할 것을 결정했다. 다만 방송일정은 2002년에는 월드컵, 지자체 선거, 아시안게임, 대통령선거 등 주요 정치일정과 이벤트가 폭주하고 있어 2003년 상반기가 유력하다. MBC 시사제작국은 5차 시리즈를 맡을 책임프로듀서로 , <3김시대>, <격동, 반세기의 통치자들> 등을 연출한 최승호 차장을 선정하고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 5차 이후 방송의 향방

이와 관련 지난 3월 15일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한국언론정보학회(회장 이범수 동아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주최한 '역사의 복원과 방송의 역할 -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중심으로' 토론회에서는 학계 또한 이 프로그램을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날 최영묵/황인성 교수는 발제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무엇을 담았나 - 보도와 다큐, 사실과 진실 사이의 줄타기'를 통하여 "<이제는...>은 정통 역사다큐멘터리라는 측면과 현대사에 대한 심층 발굴보도라는 측면 어느 쪽 잣대를 들이대도 손색이 없는 객관성과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발제에서 최영묵/황인성 교수는 MBC 시청자클럽 회원들을 대상으로 사이버 설문조사를 실시한 내용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아이러브 MBC 회원 34,722명중 응답자 1,088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이제는...>은 여성보다는 남성이, 연령별로는 10대의 시청률이 가장 낮으며 연령대가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증가하여 특히 40대 이상 장년층 시청자들의 충성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연도별 프로그램 선호도("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무엇입니까") 조사에서는 99년에 '박정희와 핵개발'(연출 최우철), '실미도 특수부대'(연출 이규정), '노근리 사건의 진실'(연출 홍상운), '언론통폐합과 언론인 강제해직'(연출 정길화), '제주 4.3' (연출 이채훈)의 순으로 나타났고, 2000년에는 '녹화사업의 희생자들'(연출 이규정), 'KT 공작의 실체 - 김대중 납치사건'(연출 홍상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연출 홍상운), '일급비밀! 미국의 세균전'(연출 김환균), '94년도 한반도 전쟁위기'(연출 정길화)의 순으로 집계되었다. 또한 2001년에는 '200억톤 물폭탄의 진실 - 금강산댐 사건'(연출 이정식), '6.25 일본 참전의 비밀'(연출 박건식), '마녀사냥 - 도시산업선교회'(연출 홍상운), '박정희와 레드콤플렉스 - 황태성 간첩사건' (연출 박건식), '반민특위 - 승자와 패자'(연출 정길화) 순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50회까지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대상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2002년 선호도 조사에서는 '북파공작원 - 조국은 우리를 버렸다'(연출 이규정), '버림받은 희생, 삼청교육대'(연출 채환규), '김일성 항일투쟁의 진실'(연출 곽동국), '강요된 해방구 - 86년 건국대 사건'(연출 조준묵), '국가보안법 - 반공의 총과 칼'(연출 이채훈)순으로 응답하였다. 이를 대체적으로 살펴 보면 비교적 확고한 주제의식과 새로이 발굴된 증언이 있는 프로그램이 강한 호소력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지난 3월 15일 토론회에서 발표된 최영묵/황인성 교수 발제에 따르면 이번 설문조사에 응답한 MBC 시청자클럽 회원들은 앞으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인권 분야 30%, 한미관계 23%, 경제·민생 분야 14%, 정치 분야 13%, 남북 관계 10%의 순으로 다루어지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제는...>에서 앞으로 좀더 깊게 다루었으면 하는 시대는 박정희 정권 23%, 전두환 정권 22%의 순으로 나타났는데, 김대중 정권이 21%로 3위를 차지하고 김영삼 정권이 9%로 4위를 차지한 것이 이채롭다. 최근의 각종 게이트로 인한 김대중 정권에 대한 실망감과 아울러 이에 대한 언론보도에 대한 불만을 함께 읽을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제는...>에 대해서 시청자클럽 회원들은 앞으로 '재연 화면 등을 통해 보다 재미있는 형식을 취했으면 좋겠다'(27%)거나, 'MC가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등 친근한 포맷을 갖추었으면 좋겠다'(22%)는 의견을 많이 제안하였으나 '현행 진행 방식이 가장 적당하다'(24%)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또 '너무 오래된 사건만 다루지 말고 최근의 일도 다루었으면 좋겠다'(48%), '억울한 사람들 얘기뿐만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좀더 반영했으면 좋겠다'(32%)는 의견이 강력히 제기된 한편으로 '지금이 가장 적당하다'는 의견도 11%가 나왔고 '옛날 일을 파헤쳐서 도움될 일이 없으니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은 2%에 불과했다. 특히 <이제는...>이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소개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43%가 '적절하다'고 응답하였고, 이어서 '약간 보수적이다'(25%), '약간 진보적이다'(17%) 등의 순이었다. 한편 '너무 보수적이다' 혹은 '너무 진보적이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2%와 1%만을 차지하여 <이제는...>이 방송 시각의 편향성에 대한 문제점은 많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와 관련 발제자들은 이 조사에서 표본집단과 모집단간의 인구사회학적 분포에 차이가 있을 것이므로 조사결과를 일반화하는데 한계점은 있겠으나 <이제는...>에 대한 적극적인 시청자들의 반응을 알아보는 것으로는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진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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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11.05 -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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