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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글화 (http://jungpd.co.kr http://jungpd.co.kr)
Subject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 6탄 방송을 앞두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 6탄 방송을 앞두고
                                          정길화(시사교양국 특임 1CP, 부장대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담당자님. 안녕하십니까? 내가 꽁꽁 묻어 둔 이야기를 이제는 말하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우리집은 대대로 아들이 귀한 집이었는데 ....(중략) 내가 장난을 치자 누이는 악! 하며 지글거리는 솥뚜껑 위로 그만 엎어지고 솥뚜껑이 넘어지며 누이는 뜨거운 숯불이 이글거리는 화로에 두 손을 짚고 말았습니다....(중략) 나는 지금까지도 누이에게 사과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하기가 왜 그리 어려운지...." 허걱 또 아니구만. 설마 하면서 편지를 펼쳐든 나는 사연이 담긴 봉투를 고이 접는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편지이기 때문이다. 이 편지는 라디오본부로 배달되어야 할 것이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MBC 라디오의 인기 프로그램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순서를 절찬리에 진행하고 있다. 저마다의 가슴속에 '오래 묵혀둔 기억 속 특별한 이야기'를 편지 사연으로 진솔히 토로하는 이 코너는 목하 청취자들의 드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보내는 청취자의 사연편지가 때때로 시사교양국으로 배달되는 일이 가끔 있는 것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뭐 브랜드 등록을 한 것도 아니니, 같은 방송사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 제목을 활용하는 것은 사실 기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원래 패로디는 오리지날이 히트를 해야 나온다. 패로디는 원전의 힘과 권위를 빌어 가치를 증식하는 것이다. '동의보감'이 공전의 히트를 했길래 '성의보감'이 있고, 'PD수첩'이 있어 'PD공책'이 나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1999년 첫방송 이래 우리 사회에 충격과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다면 그리고 일상의 안일과 침묵에 안주하던 우리들을 흔들어 깨우지 않았다면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의 코너 제목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심각한 현대사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웃고 즐기는(?)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의 코너 제목으로 차용되는 것에서 묘한 감정을 느낀다. 바야흐로 이제 한국 사람들이 과거사의 억눌림에서 해방되어 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모름지기 웃음은 느긋함과  자유로움에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코너 제목으로 사용하는 싱글벙글쇼 제작진의 여유와 재치에 경의를 표한다.

  작금 영화 '실미도'가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히트를 하고 있지만 사실 이 실미도 사건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지난 99년에 '실미도 특수부대'(연출 MBC 프로덕션 김동철 피디)라는 제목으로 이미 다룬 바 있다. 이 당시 김동철 피디는 악몽같은 세월을 기억조차 하기 싫어하는 생존자들을 카메라 앞에 끌어내기 위해 위장을 상할 정도로 같이 술을 먹어주면서 설득해야만 했다. 그들의 피끓는 증언으로 프로그램이 가능했고 그 연장선에 오늘의 '실미도'도 있다. 물론 영화 '실미도'의 성공은 제작진과 연기자가 쏟은 투혼의 결과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같은 현대사 프로그램이 우리들을 공포의 주박(呪縛)과 가위눌림에서 해체하고 우리들의 이성을 고양시키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지금까지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방송된 나날들을 돌아본다. 군인대통령 시대에서 직선제로, 다시 문민정부에서 국민의 정부로 그리고 참여정부로... 치열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더디지만 뚜벅뚜벅 진행되어 왔다. 그렇게 해서 열리는 공간에서 이 프로그램은 시작될 수 있었다. 강자와 승자에 의해 유린되어 온 우리의 제도권 현대사에 반기를 들고 말하자면 '역사 바로세우기'를 지향한 것이 지난 5년의 궤적이었다. '좌경용공 프로그램'이라는 각오했던 바의 시비도 있었고 '정권 유착 방송'이라는 터무니없는 흠집내기도 겪었지만 뚜벅뚜벅 한길을 걸어왔다. 제주 4.3을 필두로 반민특위, 보도연맹, 조봉암과 진보당 사건, 노근리, 민족일보와 조용수, 인혁당 사건, 실미도, 전태일, 전향공작, 연좌제, 부산미문화원 사건, 삼청교육대, 녹화사업, 건국대 사건, 유서대필 사건, 윤금이 사건, 의문사... 등 어느 페이지를 들추어 봐도 고통에 찬 한국 현대사를 증거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역사의 그늘에서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에게 소명과 한풀이의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사회 기득권들의 역사적 정당성에 대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 왔다. 제작진들은 늘 그 해 시리즈가 끝나면 다시 이 프로그램이 이듬해에도 방송될 수 있을까를 의심했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불사조처럼 부활해 장장 5년을 계속했고 드디어는 6년째의 방송이 박두했다. 어떤 이는 아직도 말할 것이 남아 있는가를 묻고 있지만 시대는 그래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보다 성숙함과 자신감으로 거듭나기까지 이 프로그램의 정신은 유효하다. 최근 개봉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는 유신 말기의 엄혹함이 자못 리얼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극장안 젊은 관객은 이를 그저 웃음거리로만 여기고 있었다. 암울했던 군인정권 시절을 떠올리며 치를 떠는 사람 한편으로 젊은이들은 권상우의 호쾌한 액션에만 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2004년에도 계속 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와 쉽사리 결별했다고 믿고 그 폭압을 망각하려는 타성을 깨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계속되어야 한다. 나아가 잘못 꿰어진 한국 현대사의 그 근본과 기원에 대한 치열한 성찰은 중단될 수 없다.    
  
<MBC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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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1.26 -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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