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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글화 (http://jungpd.co.kr http://jungpd.co.kr)
Subject   나의 방송 입문기
나의 방송 입문기


드디어 방송 입문 20년을 넘겼다. MBC에 안식년 제도는 당연히(?) 없고 다만 입사 10년차가 지나면 10일 휴가를, 20년이 지나면 20일 휴가를 주는데 이제 그 20년 휴가를 갈 자격이 된 것이다. 10여년 전에 맞이한 10년 근속 휴가 때 있는 돈 없는 돈을 긁어 모아 안사람과 함께 미국 동부 여행을 다녀왔었다. 그때 당시, 지금은 없어진 뉴욕 세계무역센터 앞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지나간 10년 방송생활을 반추했던 일이 있다. 그리고 다시 20년차 휴가를 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한 세월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간 세월은 항용 수유(須臾)와 같다.

1984년 ROTC 군복무를 마친 나는 본격적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스페인어가 전공이지만 스페인어는 시원치 않았다. 이문동 시절 학보사 기자생활의 경험과 추억이 생생했던 나는 일찌감치 언론현장에 뜻을 두고 그해 가을부터 각종 언론사 입사 시험에 도전하였다. 1차 시험에는 대개 합격했으나 최종관문 통과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앞둔 방송사에서 대규모 공채를 시작하였고 그 서슬에 덜컥(!) MBC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입사전형 서류를 작성할 때 같이 원서를 내던 신문방송학과 출신 친구가 “이봐. 신문은 기자지만 방송은 PD야..”라고 바람을 잡아 무심코 PD로 직종을 선택했던 것이 20여 년 후 ‘요모양 요꼴’의 나를 만들었다(정작 그 친구는 지금 신문사에 재직중이다).

당시 모 광고회사에도 시험을 봤는데 필기시험 후 공교롭게도 면접이 같은 날 비슷한 시간대였다. 이 경우 선택의 기준은 합격 가능성이 높은 곳, 그 다음으로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의 순이 될 것이다. 이제 와서 이렇게 말하면 몹시 시건방진 얘기가 되겠지만, 가늠해 본 바로는 합격 가능성은 두 곳 모두 높아서 나는 분연히 방송 PD직에 응시하기로 결정했다. PD일이 뭐 하는 것인지 당시로는 세세히는 몰랐지만 무언가 새롭고 그럴 듯해 보인 것 같았나 보다. 무엇보다 PD는 직접 프로그램을 만드는 책임자라는 것이 묘한 매력을 주었다. 그 날의 선택 이후 20여 년이 지나 현재의 내가 있다.

언론사 시험에 실패하면 무엇을 하였을까. 일단은 연말에 마감하는 신춘문예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누구나 대개들 그러하듯이 한때 문학청년이었던 나는 몇 편의 습작을 끄적이고 있었는데 장르는 시, 소설, 평론에 걸쳐 골고루 다 있었다(허걱). 이쯤 되면 간파할 일이지만 이런 사람 쳐 놓고 하나라도 잘 하는 사람 찾기 힘들다. 이따위 문어발 작전에다 로또 복권 사는 심보였기에 필경 등단을 못한 것이 아닌가 자성한다. 그 이후 해마다 신춘문예 시즌이 오면 동통처럼 그 옛날 문학의 추억이 되살아나는데 이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아닌가 싶다. 문학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은 본인에게는 아쉬움이지만 우리 문단에는 다행스런 일이 아닌지 모르겠다. ㅠ ㅠ...

텔레비전 방송 PD의 영역은 크게 드라마, 쇼 코미디 그리고 교양다큐멘터리 PD로 대별된다. 3개월여의 연수 후, 부서배치를 앞두고 심사숙고 끝에 교양 다큐멘터리 영역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 이쪽을 선택했다. 비교적 이 방면이 내게 있는 문학적 감수성(있다면...) 그리고 저널리스트적인 자질(있다면...)을 적절히 결합해서 프로그램으로 승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상과 메시지가 잘 어우러진 프로그램, 시대정신과 문명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그러난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시청자에게 감동과 아름다움을 주는 그런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당시의 내 꿈은 ‘불세출의 다큐멘터리스트 아무개’였다.

이후 20년이 흘렀다. 20여 개 성상의 궤적을 되돌아보면 회한과 자책이 엄습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지만 성과와 보람보다 결핍과 부재가 더 눈에 들어온다. 지난 20여 년 유례없는 격변 속에서 우리 사회는 요동쳤다. 6월 항쟁, 언론 노조 운동의 도래, 귄위주의 시대의 종언, 사상 최고의 언론 자유와 다매체 다채널의 무한경쟁 등.... 그 흔들림 속에서 개인으로서 직업적 전문인으로서 중심을 제대로 잡아왔는지 자신이 없다. ‘길은 끝나지 않았고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초심이 될 것이다. ‘언제나 처음처럼’은 술병에서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생활인 모두에게 언제나 필요한 말이다. 1984년의 초심으로 돌아가 그 날의 열정과 겸손을 잃지 않을 일이다. 최근 총동문회와 외대언론인회에서 불초 저에게 제8회 외대언론인상을 주셨다. 그리고 방송 입문 20년을 반추할 계기 또한 주셨다. 모처럼 지나온 발걸음을 되돌아 보았다. 과분한 영광에 충심으로 거듭 감사드린다. 방송피디로서는 첫 수상이란 것에 기쁨과 부담이 함께 있다.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의 기회가 올 때 더욱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한다.


(외대 동문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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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5.22 - 06:20
LAST UPDATE: 2006.05.28 -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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