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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글화 (http://jungpd.co.kr http://jungpd.co.kr)
Subject   <우리들의 현대침묵사> 머리말

책머리에

 

다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문화방송의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우리 현대사를 정직하게 응시하자’는 취지로 기획되어 1999년부터 방송되었다. 첫해에는 ‘제주 4·3’을 필두로 열세 편이 제작되었는데 다행히 사회적인 반응과 방송계의 평가도 좋아 이후 계속 방송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역사 속 사건의 숨겨져 있던 내막을 심층 추적하여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고, 괴어 있던 증언의 봇물을 터뜨려주었다. 시대적인 억압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많은 피해자와 증언자들이 글자 그대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카메라 앞에 나섰다. 사람들이 쉽사리 볼 수 있는 방송 시간대는 아니었지만 꽤 많은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 호응했다.

그 덕분에 이 프로그램은 현대사 증언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면서 2005년까지 장장 7년간 모두 100편이 방송되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현대사는 강자와 승자에 의해 장악되었고 언설(言說)의 통로 또한 가로막혀 있었다. 기득권 세력은 도덕적 정당성을 결여한 채 자기 극대화와 영속화를 위해 질주했고 국민은 침묵을 강요당하며 순치되었다. 20세기 한국 현대사는 고스란히 질곡과 기만의 역사다. 언론은 이른바 제도권 매체로서 권력에게 가장 먼저 동원되고 포섭되는 대상이었다. 해방 공간, 분단과 전쟁, 봉건독재와 군사독재가 엄혹하게 이어지면서 권력은 진실을 압박했다. 국민도 언론도 할 말을, 하고 싶은 말을 제때 하지 못했다. 역사는 불구였고 편파였다. 그래서 한국의 대나무밭에는 언제나 혀 짤린 말들로 가득했다. 그것은 시대의 가위눌림이었고 양심의 어혈(瘀血)이었다.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그렇게 오랜 시간 응축되었다가 비로소 나타났다. 이 프로그램이 있기까지 6월 항쟁과 문민정부 그리고 국민의 정부로 이어지는 장구한 민주화의 도정이 선행되어야만 했다. 그에 비하면 방송사 내부 일선 현업인들의 노력은 미약하고 어중되다. 기회주의, 무임승차 시비는 여전히 뼈아프다. 어떻든 제작진은 때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기회가 왔을 때 할 말은 한다는 자세로 프로그램 제작에 임했고, 이는 사계의 평가와 시청자들의 반응으로 나타났다. 친일파, 보도연맹, 한국전쟁과 포로, 일본의 핵 개발, 북파공작원, 정인숙 사건, 실미도, 10·26, 삼청교육대, 유서대필 사건, 소파(SOFA), 한반도 전쟁 위기 등 이 프로그램에서 다룬 현대사의 뜨거운 논쟁거리들은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의 성원으로 100편이라는 고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출판계에서의 ‘러브콜’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프로그램 방송이 끝나고 담당 PD들이 곧바로 다른 부서로 투입되는 등의 사정으로 성사가 쉽지 않았다. 사실 책을 펴내는 일은 기록 문화 진작과 프로그램 주제를 확대하는 측면에서 매우 필요하다. 이 책은 해냄출판사의 기획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고맙고도 뜻있는 일이다. 특히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현대사를 바로 아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 책에서는 100편의 방송 프로그램 중에서 한국 현대사에서 뜨거운 감자와 같은, 그러나 꼭 짚어야 할 20개의 역사적 사건을 우선으로 삼았다. 13인의 PD들이 자료를 뒤지고 기억을 더듬어 이 작업에 동참했다. 방송에서 못다 한 이야기, 이후 더 진행된 내용들도 포함했다.

바야흐로 이제 우리 사회에는 말 못하는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만개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조심스런 표정으로 억눌린 역사의 진실을 토로하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인 것만 같은데, 지금은 ‘언제나 누구나 말할 수 있다’의 세상이다. 인터넷에서는 누구나 언제든지 거리낌 없이 말하고 또 줄줄이 댓글이 달린다. 누구나 말의 성찬을 펼치는데, 가히 요설(饒舌)의 지경이다. 지금 세간에 흘러넘치는 ‘언설의 향연’은 놀랍고 또 미심쩍다. 봇물처럼 터져나온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는 진실로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다. 하지만 이즈음의 난만한 언설들이 제때 할 말을 하는 것인지는 회의적이다. 문제는 진정성에 달려 있다. 훗날 이 시대를 주제로 또다시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나온다면 참으로 고약한 일이 될 것이다.

출판에 임하며 드는 생각은 이 책에서 나오는 말들이 지금 세간에 떠다니는 항설(巷說)로, 혹은 후일담이나 자학사관 따위로 치부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자못 우려스럽다. 2005년 방송 종료 후 바로 나왔어야 할 책인데 출산일이 너무 늦지 않았나 하는 걱정도 든다. 냉소주의가 미만한 가운데 비이성적인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는 작금의 한국 현실에서 더욱 그렇다. 시청자와 독자 여러분의 질정과 성원을 바랄 뿐이다.

2006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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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9.17 - 12:25
LAST UPDATE: 2006.09.17 -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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